“중국 안에서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쉬울까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나라에 있다면 가족 간 소통과 방문이 용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경험은 그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상하이 교통대학교에서 치의학을 전공하는 아들과 청도에서 치기공소를 운영하는 부모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물리적 거리보다 더 큰 감정적 거리를 경험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족이 두 도시로 나뉘어 살아가면서 겪은 5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1. 두 도시의 감정 시차 –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
아들이 상하이로 떠날 때, “중국 안이니까 금방 보겠지”라는 생각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서로의 생활 스케줄이 전혀 맞지 않았고, 물리적인 이동도 쉽지 않았습니다. 주중에는 아들의 강의, 실습, 팀 프로젝트로 시간 여유가 없었고, 우리는 장시간 기공소 운영으로 매일이 빠듯했습니다. 결국 1년에 서너 번 얼굴을 보는 게 현실이 되었고, ‘같은 나라’라는 점이 오히려 더욱 큰 기대감을 만들어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2. 가족 소통 방식의 진화
과거에는 하루에 몇 번씩 통화하며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이후, 서로의 삶에 치여 대화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소통 방식을 재설계했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고정된 시간에 영상통화를 하고, 평일에는 실용적인 내용만 간단히 메시지로 주고받는 식입니다. 조언보다 칭찬과 응원이 중심이 된 이 소통 방식은 오히려 감정적 거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3. 위기의 순간에 느낀 무력감
어느 날 오후, 아들이 갑작스럽게 고열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상하이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말에 우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청도에서 출발해 도착하기까지는 항공편과 이동을 포함해 최소 5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우리는 응급 병원 정보, 보험 처리 방법, 필요한 서류 절차 등을 아들과 미리 공유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4. 서로 다른 삶의 페이스
우리는 어느 정도 중국 생활에 적응한 상태였지만, 아들은 처음으로 중국 대학에 입학해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놓였습니다. 때로는 "나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은 가족으로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고, 단순한 조언이 아닌 공감과 경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5. 재회 이후 느껴진 성장과 거리감
겨울방학, 오랜만에 가족이 다시 만났지만 반가움만큼 어색함도 있었습니다. 말투엔 중국어 단어가 섞였고, 식사 시간도 생활 패턴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의 성장과 변화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기공소 업무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번역과 문서 작성도 도와주며, 점차 가족 이상의 동료처럼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론 – 물리적 거리보다 중요한 정서적 연결
같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언제나 정서적으로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떨어져 지내더라도, 의식적인 노력과 꾸준한 소통이 관계를 지켜주는 핵심입니다. 우리 가족은 거리와 환경을 뛰어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부모와 자녀를 넘어 삶의 동반자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가족들에게 작은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